[서울] 조선의 대표 궁궐 - 조선의 법궁 경복궁
서울에는 조선의 궁궐이 5개가 있다.
왕이 살면서 정사를 돌조았던 법궁인 경복궁, 왕의 어머니 등 가족이 머물던 창경궁, 경복궁의 예비 궁궐이었단 창덕궁, 임진왜란 후 창덕궁에 왕이 머물 때 예비 궁궐로 지은 경희궁, 임진왜란 후 원산대군의 저택에 왕이 임시로 거처하면서 경운궁으로 불렸던 덕수궁까지.
경복궁의 뜻은 '하늘이 내린 큰 복'이다. 뒤로는 북악산을, 앞으로는 남산을 두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고 할 수 있다.
광화문은 일제시대 때 일본이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이전해 놓았었다. 후에 한국 전쟁 중 부서진 것을 1968년에 다시 옮기면서 남쪽이 아닌 남동쪽을 바라보도록 지었다. 그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이 일본이 만든 남산의 조선신궁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비뚤어진 것이었다.
<조선총독부가 있던 시대의 광화문>
광화문광장에서 찍어본 광화문입니다.
저 안으로 들어가 너른 마당을 지나면 흥례문이 나옵니다.
흥례문. 이 흥례문 안으로 들어가면 경복궁 앞을 흐르는 개천과 개천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액운을 막는 서수가 자리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경복궁을 안을 흐르게 되는데, 이 물과 함께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게 이 '서수'의 역할이다.
근정문 자체도 웅장하고 멋집니다.
근정전과 그 앞마당. 신하들이 품계에 따라 도열했던 곳이다. 품계별로 서야할 곳을 표시한 품계석이 있다.
바닥의 돌을 '박석'이라고 부르는데, 비오는 날 배수를 원활히 하고,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
근정전은 정치에 힘쓰는 궁이라는 곳이라는 뜻.
근정전 내부는 왕이 앉았던 옥좌가 있고 그 뒤로 보이는 그림은 '일월오봉병'으로 해와 달, 그리고 다섯개의 봉우리를 그린 그림이다. 조선의 왕은 언제나 이 그림 앞에 앉아있었다.
정치를 생각하는 곳이라는 뜻의 사정전.
사정전은 왕이 일상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주말 개념이 없었고, 쉬는 날은 명절이나 높은 신하가 죽었을때 몇일 정도였다고 하니, 왕이나 신하나 살기 힘들었던 시대였을것 같다.
조선시대의 해시계인 '양부일구'
양부일구는 작은것 한칸에 15분씩이다. 지금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5시. 실제 시간은 4시 반정도 인데, 이는 우리가 일본 동경의 시간에 맞추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아침에 힘들게 일어나 하루를 피곤하게 보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본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해서다. 그런데 이제 고칠 때도 되지 않았나? 30분 늦게 일어나게 고치면 30분이 더 생겨서 좋을것 같은데.
자경전 뒤에는 십장생을 넣은 굴뚝이 있다. 자경전 뒷담과 굴뚝을 결합해놓은 것으로 자경전의 온돌방에서 나오는 연기의 길을 모아 하나의 굴뚝으로 만든 것이다. 굴뚝 정면에는 해, 산, 물, 돌, 구름, 학, 소나무, 사슴, 거북, 불로초의 십장생 무늬를 넣었고, 그 위와 아래에 학과 나티 및 불가사리를 배치하여 불로장생 등 길상의 기능과 악귀를 막는 역할도 갖추도록 하였다.
경복궁 뒤쪽에는 연못과 향원정이 있다. 향원정의 뜻은 '향기는 멀수록 그윽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금은 공사중/복원중이다. 연못에 물을 빼고 연구를 했더니 출입을 위한 다리가 뒷쪽에 있었다고 한다.
복원이 완료되면 원래의 모습 그대로의 향원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창경궁의 하이라이트인 경회루.
왕이 신하들을 불러 연회를 배풀던 경회루.
조선시대 최고의 법궁인 경복궁은 많은 건물들이 임진왜란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놀랍도록 훌륭한 건물들이 많이 있으며, 계속해서 예전 건물들을 복원하고 있다.
철저한 고증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완벽하게 복원되어 우리 역사의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관람시간 : 9시 ~ 18시(입장은 5시까지). 동절기에는 17시까지(16시까지 입장)
관람요금 : 3,000원(5개의 궁궐과 종묘를 갈 수 있는 통합입장권은 10,000원)
휴관일 : 매주 화요일
봄과 가을에는 야간 개장을 하기도 한다. 경복궁과 창경궁이 야간개장을 하는데 창경궁이 야경은 좀 더 좋은것 같다. 경회루 하나만 놓고 보면 최고긴 하지만.. ㅎ